그런 김독자의 생각 혹은 바람과 달리 유중혁의 마음은 김독자가 자신을 좋아했고, 이미 그것이 과거형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시시각각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짝사랑을 음미한다느니 하는 태평한 생각이나 했던 자신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김독자의 흔들리는 표정에 기대어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건드리면 ...
김독자도 유중혁이 자신에게 고백해오는 장면을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짝사랑이 이토록 긴 시간 이어질 줄 몰랐던, 아직 유중혁을 향한 마음이 그를 갉아먹지 않았던 때의 일이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방과후 빈 교실에 유중혁이 자신을 찾으러 왔을 때, 무더운 여름 나란히 그늘 아래를 걷다 나뭇잎 틈새로 비친 햇살이 드리운 옆얼굴을 보며, 그리고 어느 ...
"유중혁, 오랜만.""저번에는 잘 들어갔나?""언제? 아, 그거 신경 쓰지 말라니까. 당연히 잘 들어갔지."말간 얼굴로 인사하며 손을 흔드는 김독자를 보며 유중혁은 전과 달리 가슴이 기분좋게 뛰는 것을 느꼈다. 3주만의 만남이었다. 예전에 비하면 비교적 최근에 만났던 셈이지만 마음을 자각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유중혁에게는 무척 오랜만으로 느껴졌다. 게다...
'여자친구가 생겼다.''알아, 인마. 학교에서 그거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걸.''남들이 멋대로 퍼트린 말 말고, 너에게는 내가 직접 말해주고 싶어서.'빈 교실, 지금보다 앳된 목소리에 유중혁이 대꾸했다. 제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 역시도 지금만큼 낮지 않았다. 유중혁이 점심시간에 고백을 받은 것은 그가 그것을 수락하고 교실로 돌아가기 전에 이미 파다하게...
기나긴 시간 이어져온 마음을 정리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나 이 순간을 그려왔던 것처럼 제법 순조롭기까지 했다. 이래도 돼? 이게 진짜 사랑이었던 게 맞나? 그런 의문이 이따금씩 떠올랐다. 하지만 닿을 때마 다 떨리고 어찌할 바 모를 만큼 애달프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 지 오래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김독자가 그 사랑에 ...
온통 신경을 긁는 일들 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대며 저를 들들 볶는 상사의 말을 흘려들으며 김독자가 속으로 생 각했다. 제 인생에서 좋은 것이라고는 멸살법과 유중혁 정도라고 생각하는 김독자에게 일상은 본래도 감흥없음과 염증 나기의 반복이기는 하였다. 물론 마음의 문제다 보니 좋은 것이 김독자를 힘들게 할 때도 있긴 했다. 또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
"김독자." "어엉?" "조금 있으면 다 되니까 잠들지 마라." 유중혁은 그리 말하면서도 제 말이 지켜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독자의 목소리에서는 졸음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또 밤늦게까지 웹소설이라도 본 모양이지. 제 짐작대로 다시 기울기 시작하는 김독자의 고개를 본 그가 다시 몸을 돌렸다. 오랜만의 만남이었고, 오랜만의 김독자...
유중혁이 침실에 들어선 것은 김독자가 잠들고 난 후였다. 뒷정리를 하고 애인과 통화를 하고 나니 시간은 제법 지나 있었다. 방 안의 정경을 본 유중혁이 또다시 기가 찬 얼굴을 했다. 오늘 대체 몇 번이나 기가 차는 건지. 김독자는 반은커녕 반의 반바퀴만 굴러도 몸이 기울어 침대 아래로 떨어질 수 있을 만큼 끄트머리에 바짝 붙어서는 등을 돌린 채 자고 있었다...
저녁은 유중혁의 집에서 먹기로 되어 있었다. 별달리 먹고 싶은 것이 없다는 김독자에게 유중혁이 제안한 것이었다. 때는 한창 저녁 식사 시간이라 어떤 식당이든 붐빌 것이기에 김독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독자, 오늘 자고 갈 건가?" "어, 아니. 집에 가야지. 너 내일 여자친구랑 약속 있다며?" "……." "아얏! 왜?" "고민하는 척도 안 하는군....
이러한 일이 가끔 있기는 했지만 김독자의 짝사랑은 대체로 굴곡 없이 흘러갔다. 오랜 세월 깎여나가 둥글둥글하고 완만해진 감정이었다. 그저 그 자리에 가만 놓여있을 뿐, 모난 곳 없어 불쑥 튀어나오지도 않는. 그 날의 일 또한 김독자에게 이렇다 할 앙금을 남기지 않은 채 '그럴 수도 있는 일'로서 지나갔다. 유중혁은 정말로 나중에 비싼 식당에 김독자를 데려갔...
*해당 썰을 기반으로 한 연성입니다. 김독자의 삶 중 절반가량의 시간에는 항상 유중혁이 있었다. 중학교에서 처음 만난 이후 지금까지 친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스물여덟이 된 지금 꼭 14년 째였으니 말이다. 좁고 얕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김독자에게 있어 친한 친구라고 할 만한 이는 유중혁 하나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딱히 사교성이 좋은 편은 아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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